[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 한국인, 왜 밥상에서 술을 마실까
뜨끈한 국밥 앞에 소주 한 잔을 놓는다. 비 오는 날에는 김치전이나 파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따른다. 고기를 구울 때도 술 한 잔이 빠지면 섭섭하다는 사람이 많다. 우리에게 술과 음식이 함께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반주는 밥 '반'(飯)에 술 '주'(酒)를 쓴다. 말 그대로 밥을 먹을 때 곁들이는 술이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밥상에서 술을 마셨을까. 그리고 우리 술은 왜 음식과 이토록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됐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반주를 '밥을 먹을 때 함께 마시는 술'로 정의한다. 주로 저녁상에서 식사 전에 술을 한두 잔 마셔 피로를 풀고 식욕을 돋우려는 뜻이 있었다. 사전은 이 관습이 가정에서 술을 빚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눈여겨볼 대목은 마시는 순서다. 오늘날에는 밥을 먹는 내내 소주나 맥주를 곁들이는 모습이 흔하지만, 전통 반주는 밥을 먹기 전에 술을 몇 잔 마신 뒤 식사를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일반 술상과 반주를 이렇게 구분한다. 술상에서는 술을 마신 뒤 만둣국이나 떡국, 국수장국으로 식사하거나 밥과 술을 번갈아들었다. 반주는 술 마시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나뉘어 있었다.
반주로 마시는 술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대개 맑은 술을 썼다. 봄·가을·겨울에는 약주류를, 여름에는 약소주류를 마셨다. 가을에는 햅쌀로 빚은 신도주(新稻酒)나 국화주를, 봄에는 소국주와 삼해주를 반주로 들었다. 여름에 마신 약소주는 소주에 용안육과 대추, 인삼 등을 넣어 우려낸 술이다. 기온이 높으면 쉽게 시어지는 발효주 대신 도수가 높은 소주를 여름 술로 삼은 것이다.
다만 모든 가정이 이처럼 철마다 다른 술을 빚어 마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러 술을 갖출 수 있었던 집안의 경제력과 생활환경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조선 왕실에도 반주를 둘러싼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다. '승정원일기' 1737년(영조 13) 윤9월 16일 자에는 식욕이 떨어진 영조에게 신하들이 반주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영조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약방 제조 윤순은 음식 생각이 없을 때 술을 조금 마시면 입맛이 돌 것이라고 아뢰었다. 영조는 술이 어떻게 식욕을 돋우느냐고 되물었다.
도제조 김흥경도 거들었다. 술을 마실 수 있다면 반주가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의관 역시 평소 반주를 드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영조의 생각은 달랐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핑계라는 취지로 답하며, 술을 마시려면 마실 일이지 왜 굳이 밥과 함께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영조의 이런 태도는 그의 술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영조는 조선 국왕 가운데 금주령을 가장 엄격하게 시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반주 논쟁이 있고 18년 뒤인 1755년(영조 31) 9월 전국에 금주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정월부터 시행했다.
제사에도 술 대신 단술을 쓰게 했고, 1762년에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남병사(함경남도 병마절도사) 윤구연을 참수했다. 그런데도 약재를 넣은 청주는 허용됐기 때문에 양반층에서는 술을 '약주'라 부르며 마시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승정원일기의 반주 기록은 조선시대에도 반주를 식욕과 연결해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효능을 두고 생각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물론 당시의 이런 인식이 오늘날 의학적으로 입증된 효능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반주에는 별도의 안주를 만들지 않고 밥상에 놓인 마른반찬이나 젓갈, 장아찌 등을 곁들였다. 술국도 따로 끓이지 않고 식사에 나오는 맑은국이나 토장국으로 대신했다. 술은 주전자에 담아 중탕으로 따뜻하게 데운 뒤, 격식 없이 술잔이나 주발 뚜껑에 따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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