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사 이야기]왕실 서고 규장각, 정조 땐 ‘인재 양성소’였다
1779년 가을 어느 밤, 창덕궁 후원의 한 건물에서 네 사람이 등불 아래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청에서 들여온 책을 검토하고 옮겨 적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이들은 아버지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벼슬길이 막혀 있던 서얼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나라의 학문과 정책을 이끌 기관이 불러들였습니다.● 학문의 별, 개혁을 이끄는 배움터가 되다 규장각의 ‘규(奎)’는 하늘의 별자리 가운데 학문을 맡은 규성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학문의 별이라는 뜻으로, 왕의 글과 학문을 상징합니다. 이 명칭은 숙종 때 왕실의 글을
이 요약은 매체의 공개 피드에서 5News가 수집한 것입니다. 전체 맥락을 포함한 전체 기사는 www.donga.com에 있습니다 — 콘텐츠 저작권은 Donga Ilbo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