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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 불을 다스려 완성한 열매, 토마토

Yonhap News Agency ·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 불을 다스려 완성한 열매, 토마토

한여름 들녘을 걷다 보면 유난히 햇빛을 오래 머금은 붉은 열매가 눈에 들어온다. 토마토다. 요즘은 비타민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기억되지만, 이 열매가 우리 땅에 들어온 지는 400년이 넘었다.

토마토의 고향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지다. 야생종이 중앙아메리카로 옮겨 가 멕시코 일대에서 작물이 됐고, 16세기 에스파냐 사람들이 유럽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한동안 이 열매를 먹지 않았다. 가짓과 식물이라 독이 있다고 의심해 뜰에 심어 두고 구경만 했다. 이탈리아에서 토마토를 '포모도로', 곧 황금 사과라 부른 것도 관상용이던 시절의 흔적이다.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14년이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남만시'라는 이름으로 이 열매를 적었다. 남쪽에서 온 감이라는 뜻이다. 풀에서 나는 감으로 봄에 심어 가을에 열매를 맺으며 맛이 감과 비슷하다고 설명한 뒤, 어느 사신이 중국에서 종자를 얻어 왔다고 기록했다. 세 차례 명나라를 다녀오며 안남과 유구, 섬라의 사신과 교류했던 이수광이었기에 남길 수 있었던 대목이다.

우리말 옛 이름은 '일년감'이었다. 한 해 만에 나고 지는 감이라는 뜻이니, 400년 전 이수광의 관찰과 그대로 이어진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번가(番茄)라 했다. '번'(番)은 바깥에서 들어왔다는 표시다.

채소인지 과일인지를 두고는 재판까지 벌어졌다. 189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관세 분쟁을 다루며 토마토를 채소로 판단했다. 식물학적으로는 열매지만 식탁에서 후식이 아니라 반찬으로 오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름도 분류도 흔들려 온 열매다.

한의학은 토마토를 맛이 달고 새콤하며 성질이 약간 찬 식재로 본다. 효능으로는 갈증을 덜어 주는 청열생진(淸熱生津),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건위소식(健胃消食), 간의 열을 내리고 혈을 맑게 하는 양혈평간(凉血平肝)을 꼽는다.

여름은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계절이다. 강한 볕 아래 땀을 흘리면 몸속 진액이 쉽게 마른다. 이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음식 자체가 아니라, 열은 식히면서 생기를 지켜 주는 음식이다. 갈증이 물만으로 풀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당나라 명의 손사막은 '천금요방' 식치(食治)편에서 병을 다스리기에 앞서 먹는 것부터 바로잡으라고 했다. 약을 찾기 전에 평소 식생활로 몸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참된 의술이라는 뜻이다. 더위에 지친 몸에 수분을 채우고,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깨우며, 소화를 돕는 토마토는 이 식치의 관점에 잘 들어맞는다.

우리 조상도 한여름이면 우물에 담가 둔 과일과 채소를 꺼내 먹었다. 몸을 차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준 수분과 생기를 받아들이려는 생활의 방식이었다.

토마토의 붉은빛을 만드는 리코펜은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항산화 성분이다.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비타민 C는 면역 기능과 콜라젠 생성에 관여하고,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관리에, 식이섬유는 장 건강에 관여한다.

눈여겨볼 것은 조리에 따라 성분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이 2002년 발표한 실험이 자주 인용된다. 토마토를 88도에서 2분, 15분, 30분씩 가열한 결과 흡수되기 쉬운 형태의 리코펜은 시간이 길수록 늘어났지만, 비타민 C는 30분 뒤 30% 가까이 줄었다. 열이 세포벽을 무르게 해 리코펜이 빠져나오도록 돕지만, 열에 약한 비타민 C는 그 과정에서 손실된다.

리코펜이 지용성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흡수율이 올라간다. 올리브유에 살짝 볶거나 소스로 끓이는 방식이 권장되는 근거다.

정리하면 이렇다. 수분과 비타민 C를 얻고 싶다면 생으로, 리코펜을 얻고 싶다면 기름과 함께 익혀서 먹는 편이 낫다. 어느 한쪽이 옳은 것이 아니라 목적이 다를 뿐이다.

우리 식탁도 두 길을 모두 열어 두었다. 토마토는 서양에서 들어온 작물이지만 지금은 샐러드와 달걀볶음, 비빔국수, 된장찌개, 장아찌에까지 스며들었다. 특히 토마토죽은 눈여겨볼 만하다. 죽은 예부터 몸이 약하거나 회복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던 음식이다. 쌀의 부드러운 기운에 토마토의 산뜻함이 얹히면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영양을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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