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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찬미'부터 BTS까지 K팝 100년…식민지 설움 딛고 희망 노래

Yonhap News Agency ·
'사의찬미'부터 BTS까지 K팝 100년…식민지 설움 딛고 희망 노래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소프라노 윤심덕이 1926년 8월 '사의 찬미'를 발표한 이래 지난 한 세기는 곧 우리나라 대중음악사 100년과 일맥상통한다고 평가된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의 설움과 슬픔을 달래던 우리 가요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쳐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흐름을 타고 전 세계인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K팝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 미8군쇼는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는 등용문 역할을 했고, 이 무대에서 출발한 가수들은 왜색을 벗고 우리 고유의 대중음악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26년 8월 발매된 '사의 찬미'는 노래를 부른 윤심덕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맞물려 화제를 모았다. 2년 뒤인 1928년 이애리수가 노래한 '황성옛터'(음반 발매는 1932년)는 고려 옛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빗댄 가사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에도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국민가요가 됐다.

1945년 광복과 1950∼1953년 한국전쟁 이후 우리 대중음악은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음악 무대인 미8군쇼를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다.

광복 이전까지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대중음악은 미8군쇼를 통해 서구 요소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였고, 왜색을 탈피하며 고유의 가요 장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미8군쇼 출신 가수들로는 '미국 한류의 원조'로 꼽히는 김시스터즈, '최초'란 수식어를 많이 몰고 다닌 패티김,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의 한명숙, 미니스커트 붐을 일으킨 윤복희, 작곡가 이봉조와 음악 콤비를 이뤄 활약한 현미 등 면면이 화려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당시 '꿈의 무대'로 불리던 미8군쇼에 서기 위해서는 미군 부대에서 파견된 쇼 관계자가 심사하는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며 "이 오디션을 통과한 가수들이 우리 음악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으면서 '가요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초창기 어색한 발음의 영어로 미국 음악을 모방하는 데서 출발한 미8군쇼는 차차 미군 부대를 넘어 우리 대중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출연 가수들이 남는 시간을 활용해 TV 방송, 음반 취입, 무대 공연을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도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1961년 한명숙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의 대히트는 미8군 가수들이 일반 무대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계기로 여겨진다.

또한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1964년 '동백 아가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1960년대 대중음악의 아이콘이자 '엘레지의 여왕'으로 활약했다.

이 시기 '한국의 비틀스'로 등장한 키보이스를 비롯해 신중현과 애드포, 히파이브(후일 히식스), 영화 '고고 70' 주인공인 데블스, '가왕' 조용필이 활동한 김트리오 등 다양한 그룹사운드가 활약했다. 또한 1960년대 음악 감상실 쎄시봉에서는 윤형주,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등 '쎄시봉 4인방'을 비롯해 걸출한 포크 스타들이 탄생했다.

남진은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이래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1960∼1970년대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는 톱스타로 군림했다.

나훈아는 자신이 직접 밝힌 데뷔 연도인 1967년 이후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임 그리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일약 톱스타로 도약했다. 인기에 힘입어 1971년 '풋사랑'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영광', '우정', '동반자' 등 다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약했다.

나훈아는 당대 최고 남자 가수였던 남진이 월남전 청룡부대에 파병돼 가요계를 잠시 비운 사이 인기가 급상승했고, 1972년 남진이 속했던 지구레코드로 이적하면서 한 지붕 아래 경쟁은 절정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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