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들고다니면 다 알아봐” 한국 3000원 쇼핑백이 여행 필수품 된 이유
명품도, 한정판도 아니다. 3000원이면 살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 한국 여행의 필수품이 됐다. 일상으로 돌아간 뒤 “한국 다녀왔어요”라고 보여주는 데 이만한 ‘인증템’이 없다. 바로 헬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서 판매하는 타포린백이다. 물건을 담아가는 평범한 쇼핑백이 어떻게 여행 필수 기념품이 됐을까. 한국인에게는 흔한 물건이 외국인에게는 ‘한국에 가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소비 심리를 들여다봤다.
지난 12일 서울 홍대 거리 곳곳에서는 올리브영 타포린백을 든 외국인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올리브영에서 쇼핑을 마친 관광객들이 커다란 타포린백에 화장품은 물론 여행 중 구입한 각종 물건까지 담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올리브영 매장 앞에서 만난 20대 대만인 관광객 린씨(가명) 역시 쇼핑을 마친 뒤 커다란 타포린백을 들고 매장을 나섰다. 그는 “대만에서도 이 가방을 들고 다니면 다들 알아본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 중에는 화장품을 넣기에도 좋고, 다른 쇼핑 물건까지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 편리하다”며 “한국에 다녀왔다는 추억도 남아 여행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40대 주부인 일본인 관광객 야마모토 히토미씨는 실용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다른 브랜드의 타포린백보다 훨씬 튼튼하다”며 “지퍼까지 달려 있어 물건을 넣은 채 그대로 수하물로 부치기에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올리브영 타포린백이 하나의 ‘한국 여행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판매량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리브영은 타포린백을 2025년 1월 출시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글로벌 관광상권 약 150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올해 7월 말까지 누적 판매량은 약 178만개에 이른다.
처음부터 ‘굿즈’를 목표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여행객들이 구매한 화장품을 편하게 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재사용 쇼핑백에 가까웠다. 하지만 큼지막한 크기에 어깨에 걸칠 수 있고, 지퍼까지 달려 있다는 실용성이 입소문을 탔다. 이승훈 올리브영 홍보팀 과장은 “일회용 종이 쇼핑백보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고,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멜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며 “일본에 가보니 길거리에서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개최된 ‘올리브영 페스타 JAPAN 2026’ 현장에서 현지 고객들이 올리브영 타포린백을 들고 행사를 즐기고 있다. 올리브영 제공
한국인에게 그저 화장품을 사고 담아오는 쇼핑백이 왜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굳이 돈을 내고 사서 본국까지 가져가는 물건이 됐을까. 이 현상은 미국의 트레이더 조 장바구니 열풍을 떠오르게 한다.
미국을 여행한 한국 관광객 사이에서는 트레이더 조의 에코백(사진)이나 장바구니를 사오는 일이 낯설지 않다. 가방 자체가 특별히 고급스럽거나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귀국 뒤 그 가방을 들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미국에 다녀왔다’는 메시지가 된다. 해외여행이 지금보다 흔치 않았던 시절 해외에서 사온 물건 자체가 여행 경험의 증표가 됐던 것과도 닿아 있다.
다만 전문가는 올리브영 타포린백의 경우 미국 식료품 전문점 ‘트레이더 조(Trader Joe’s)’ 가방과 완전히 같은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트레이더 조 가방이 과거 ‘미국에 다녀왔다’는 과시용 여행 경험 자체를 보여주는 성격이 강하다면, 올리브영 가방은 애초에 외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에 직접 갔다는 경험을 드러내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박혜경 부경대 경영학부 교수는 “트레이더 조가 미국을 여행하다가 들르는 일반 마트라면, 외국인에게 올리브영은 한국에 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자체”라며 “단순히 한국에 다녀왔다는 것보다 ‘내가 선망하던 K뷰티의 현장에 실제로 가봤다’는 문화적 경험이 담긴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올리브영을 찾는다고 해서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화장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K뷰티 브랜드와 제품은 이미 해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한국의 올리브영을 직접 찾는다. 제품을 사는 것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한국의 올리브영에서 쇼핑해봤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사람에게 올리브영은 너무 익숙한 일상 공간이지만, 해외 소비자에게는 K뷰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선망의 대상이 된 곳”이라며 “그 장소에 직접 가봤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된다”고 설명했다.
희소성도 인기 이유 중 하나다. 만약 이 가방을 해외 온라인몰에서 누구나 쉽게 주문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한국 여행 인증템’이 됐을까. 가격은 3000원으로 저렴하지만, 해외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가치를 만든다.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이지만, 아무 데서나 살 수는 없는 물건. 올리브영 타포린백의 묘한 희소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박 교수는 “희소성이 반드시 비싸거나 생산량이 적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특정 장소에 직접 가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소비자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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