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 판소리가 먼저 알았던 말하기 법칙
필자는 지난 칼럼에 우리말은 상대를 정해야 문장의 끝을 맺을 수 있는 언어이며, 그래서 한국인은 유난히 '자리'에 예민한 화자로 길러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자리를 읽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판소리 광대가 갖춰야 할 네 가지, 이른바 사대법례(四大法例)다. 놀랍게도 오늘날 스피치 교재의 목차와 거의 같다. 인물치레는 겉모습이고, 사설치레는 내용이며, 득음은 목소리이고, 너름새는 몸짓과 판을 읽는 감각이다. 서양이 TED와 프레젠테이션 이론으로 정리한 것을 우리는 150년 전에 네 마디로 압축해 뒀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순서다. 신재효도 인물을 첫째로 꼽았다. 다만 그는 곧바로 "인물은 천생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라고 못 박았다.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나머지에 힘쓰라는 뜻이다. 실제로 판소리사에는 인물과 무관하게 명창이 된 이가 즐비하다. 요즘 연구자는 인물치레를 외모가 아니라 됨됨이와 기품으로 넓혀 해석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목소리는 다분히 선천적이다. 그러나 좋은 목소리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다. 목소리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너무 자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너무 고민할 이유도 없다. 정확하고 명료한 발음, 교양 있고 부드러운 말씨와 말투로 목소리 자체의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다.
판소리에서 네 가지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치는 것이 득음(得音)인 까닭도 여기 있다. 인물은 타고나고 사설은 대개 남이 지어주지만, 득음만은 오로지 후천적 노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재효는 득음을 "오음을 분별하고 육률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 제"라 했다. 오장, 곧 몸통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지금 말로 하면 복식호흡이다. 긴장하면 숨이 얕아지고 가슴으로만 쉬게 된다. 그러면 소리가 위로 뜨고 문장 끝이 흔들린다. 하필 우리말은 그 흔들리는 끝자리에 높임과 종결의 정보가 다 몰려 있다. 문장 끝이 뭉개지면 뜻만 흐려지는 게 아니라 예의까지 흐려진다. 아랫배로 숨을 밀어 넣는 훈련을 방송 아나운서들이 신입 시절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이유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말을 시작하기 직전 깊게 한 번 들이쉬고, 평소보다 반 톤 낮춰 첫 문장을 또박또박 여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 해결된다.
그다음에 경쾌함과 생동감을 들 수 있다. 이 시대 대부분의 말하기는 이 두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쟁력 있는 말하기를 위한 필수 항목이다.
우선 경쾌함은 말의 속도와 관련이 깊다. 무엇보다 느리면 안 된다.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는데도 왜 졸음을 참을 수 없었는가. 느렸기 때문이다. 삶의 여유를 찾자는 '느림'의 미학이 있지만, 말하기에서 느리다는 것은 적어도 마이너스다.
이 대목에서 우리말은 대단히 유리한 언어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풍부하기 때문이다. 아장아장, 성큼성큼, 뚜벅뚜벅. 걸음 하나에도 결이 다른 말이 여럿이다. 반짝반짝과 번쩍번쩍, 방긋과 벙긋이 다르고, 모음 하나 자음 하나를 바꿔 크기와 무게와 온도를 조절한다. 이런 말을 아껴 쓸 이유가 없다. 추상적 한자어를 늘어놓는 대신 이 말들을 제자리에 놓기만 해도 문장에 생기가 돈다.
판소리 사설이 지루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치다. 소리꾼은 흥보가 박을 타는 장면에서 톱질 소리를 흉내 내고, 새가 날아드는 대목에서는 새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듣는 이가 그 장면을 눈앞에 그리게 만드는 것이다. 화자는 존재감에서 먼저 생동감을 뿜어내야 한다. 참선과 기도의 장(場)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심플함은 복잡함을 항상 이긴다. 적어도 말하기에서는 예외 없이 그렇다. 텍스트가 어렵고 복잡하고 얽히고설켜 있으면 하나도 못 건진다. 명제가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
단순화하면 청중이 오해할까 봐 설명을 자꾸 덧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착각이다. 설명이 길어지면 메시지는 약해진다. 긴 설명을 한꺼번에 하지 말고 짧은 설명을 나누어 할 일이다.
신재효가 사설의 조건으로 든 말이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다. 잘 벼린 쇠와 아름다운 옥처럼 군더더기 없는 말로, 분명하고 또렷하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분명'과 '완연'이 나란히 놓였다는 점이다. 뜻이 분명해야 하고, 그것이 듣는 이에게 또렷이 건너가야 한다. 둘은 다른 일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도 결국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모음 하나 차이로 말맛이 갈리는 언어를 쓰면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말을 고르는 일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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