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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기 앞두고…비극의 다음날 '연대의 9·12' 기억하는 뉴욕

Yonhap News Agency ·
25주기 앞두고…비극의 다음날 '연대의 9·12' 기억하는 뉴욕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이 거대한 공동체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9·11로 목숨을 잃은 누군가와 인연이 닿아 있었는지 모릅니다. 제 삼촌이 돌아가셨고, 어릴 적 가장 친했던 친구의 삼촌도, 옆집 이웃의 소방관 아들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사촌은 뉴욕 경찰(NYPD)이었습니다."

9·11 테러 25주기를 앞둔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서 만난 로건 밀러(33)는 25년 전 뉴욕 시민들이 겪었던 공동체의 아픔을 이렇게 전했다.

박물관 후원 그룹인 '비저너리 네트워크'(Visionary Network) 회원으로 활동 중인 밀러는 2001년 9월 11일 당시 뉴욕 퀸스의 한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등교했고, 그가 궁금했던 것은 점심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분위기가 달라졌고, 점심 무렵 그를 데리러 온 아버지를 통해 뉴욕에서 '끔찍한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했다.

뉴욕주 대법원 경위로 응급구조사(EMT) 훈련을 받았던 그의 삼촌은 당시 세계무역센터(WTC)에서 몇블록 떨어진 법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삼촌은 비행기가 WTC 북쪽 타워와 충돌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을 벌이다, 남쪽 타워가 무너지면서 현장에서 순직했다고 한다. 당시 구조활동 중 한 언론에 찍힌 사진이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도 WTC의 부지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유독성 먼지와 오염물질에 노출된 그는 수년 뒤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테러 15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밀러는 "대부분의 사람은 9·11을 25년 전 그날 사망한 이들만을 떠올리지만, 현장에서 남을 돕다 목숨을 잃거나 이후 유독성 물질에 노출돼 숨져간 이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가족사를 꺼내놓은 것은 오는 9월 12일 이 박물관에서 공개되는 특별 전시 '그들을 기리며'(In Their Honor)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참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 자리한 9/11 메모리얼 박물관은 9·11의 상흔을 지우기보다 WTC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초와 철골 구조물 등을 보존해 당시의 흔적을 보여준다.

25주기를 맞아 마련된 이번 특별전은 9·11 참사 당일의 비극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날인 9월 12일부터 시작된 회복의 시간을 보여준다.

참사 직후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재난의료지원팀(DMAT) 인력과 자원봉사자, 현장 복구 인력, 유족 등은 서로의 상처를 돌보고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움직였다.

이날 미리 둘러본 전시장에는 당시 그라운드 제로에 설치된 임시 텐트의 합판 가벽에 구조·의료지원 인력들이 직접 남긴 서명과 패치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우리는 아픔을 보살피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부디 스스로를 잘 돌보십시오" 등 서로를 격려하는 메시지들이다.

9·11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재난 피해자 지원 활동가였던 메리 페챗, 참사로 남편을 잃은 뒤 항공기 보안 강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 항공기 조종실 이중 출입문 설치 의무화 등 연방 법안 통과를 끌어낸 엘렌 사라치니 등의 활동 기록도 전시됐다.

자원봉사자 바실 라이든은 당시 출동했던 '래더(Ladder) 3' 소방차를 가리키며 "교대 시간 직후 출동해 아침 식사 냄새조차 가시지 않은 채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이라며 "그들이 지키려 한 것은 거대한 숫자가 아니라 이웃의 평범한 일상이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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